나는 서가의 책을 사백 권으로 제한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책은 감정적 가치 때문에, 또 어떤 책은 틈만 나면 되풀이해 읽는 것이라 서가에 남았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한평생 정성을 다해 꾸민 서가라도, 주인이 죽고 나면 결국 무게 단위로 팔아치우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모든 책을 집에 모셔놓아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친구들에게 교양을 과시하려고? 벽이 허전해서 장식용으로? 내가 산 책들은 내 집에서보다 공공도서관에서 훨씬 널리 읽힐 것이다.
당연히 지금도 나는 책을 산다. 책을 대신할 전자매체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다 읽고 나면 여행을 떠나보낸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공공도서관에 기증하는 것이다. 숲을 지키기 위해, 혹은 인심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에는 그것 나름의 길이 있고, 꼼짝없이 책꽂이에 묶여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책을 여행시키자. 다른 이들의 손에 닿고, 다른 이들의 눈이 즐길 수 있도록. '다시는 펼쳐지지 않을 책들'이 나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 한 편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젠 기억에도 아득한 베를렌의 시구가,
더는 발길 닿지 않을 거리가,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비춰본 거울이,
다시는 열지 않을 문이 있다.
내 눈앞 저 서가에
다시는 펼쳐지지 않을 책들이 있다.
내가 책들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감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다. 나는 그 책들을 다시 펼쳐보지 않을 것이다. 새롭고 흥미로운 책들은 부단히 쏟아져나오고, 나는 그런 책들을 계속 읽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인회 때,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내 책을 들고 오는 독자들을 만나는 것 역시 멋진 일이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여남은 번도 넘게 돌아다닌 책. 그 책을 쓰는 동안 작가의 영혼이 여행을 했듯이, 책 역시 나름의 여행을 한 것이다./파울로 쿄엘로
어제 도서관에서 네덜란드디자인여행 에 관한 책을 읽었다. 책머리에 그들 부부가 언급했듯이 그 책은 네덜란드를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디자인에 관한 고찰. 같은 건 아니었다. 그치만 그 책을 통해서 네덜란드를 알게 되었고,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라는 흥미로운 곳도 알게 되었다. 그곳은 파브리카와도 비슷한 곳이였는데 역시나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네덜란드에서 수십년 전부터 쏟아져 나온 텍스트들과 모든 인쇄물들은. 대단했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 같은 게 보였다. 그리고 어제 집에 와서 티비를 트니, 부산의 한 헌책방골목이 소개가 되고 있었다.
OO동 이라고만 했을 때 펜으로 적어두었었다. 이번주에 찾아가 봐야지 했는데 부산이더라. 한 헌책방 주인아저씨는 3,000원으로 커피 한 잔을 사 마실수도 있지만 헌책방에 오면 그보다 더 값진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 업에 종사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거리의 헌책방들은 모두 10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오륜서 였던가. 단 3일 촬영하는 그 때에 맞춰 27살 청년이 저 책을 찾았었고 37년 된 저 책은 그아저씨네 책방에 딱 한 권 있었다.
책을 사가지고 가는 그 청년 뒤에 아저씨는, 저 책이 꼭 1년을 기다렸다고. 이제야 주인을 만났다고 했다. 그런 게 오래된 것에 대한, 돌고 도는 것에 대한 재미인 거 같다.
기분이 울적해서 아침부터 알랭드보통의 모든 책을 찾아보다가 내가 선택한 건 '동물원에 가기'
그런데 마침 동물원에 가기 옆에 꽂혀져 있던 책이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이다. 파리의 특정 고서점에서 인연을 맺은 것들을 책으로 엮었단다. 꼭 헌책방이 아닌 우리도서관에서도 이런 보물찾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또 동무와 연인 이라는 책도 찾아냇다. 부제는 말, 혹은 살로 맺은 동행의 풍경. 시간을 내서라도 이번주엔 꼭 가가린에 다시한번 다녀와야겠다.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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