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두 인물들은 모두 정규 미술교육 코스를 밟지 않았따는 것, 그리고 화랑과 미술관이 아니라 길에서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작품 내용에선 다른 부분이 더 많다. 바스키아는 그 표현 형식과 내용이 '개인'과 '개성'이라는 범주 내에 있다. 바스키아에선 자유스런 표현과 결합한 흑인성이 돋보인다. 그의 신선한 표현형식은 그의 독특한 내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형식주의적 특징이 그가 우리를 끄는 매력이다.(사진18)
하지만 뱅크시의 궁극적 관심은 '개인의 드러냄'에 있지 않다. 그는 공동체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 바스키아가 이 세계야 어떻든 '자기'를 충실히 표현하는데 그쳤다면, 뱅크시는 이 세계의 정의에 관심을 둔 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바스키아가 출세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앤디 워홀과 몇 화상과 밀착했다면, 뱅크시는 미술계의 스타라든지 영향력 있는 인물보다는 '그린피스Green Peace'같은 환경단체나, 비정부단체NGO, 브라이언 하우Brian Haw-영국의 의사당 앞에서 5년째 반전,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인물-같은 평화운동가들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바스키아는 모더니스트적인 자유주의자로서 단독으로 백인 주류 미술계에 뛰어든 흑인이었으나, 그의 미학과 실천은 '개인의 표현'과 '회화의 형식' 이라는 테두리를 결코 넘지 않았다. 하지만 뱅크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 아나키즘과 반자본주의적 질서를 주장하며, '개인'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인류 공동체를 바꾸려 노력한다. 그의 작품은 그것을 위한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형식주의자formalist' 가 아니라 '도구주의자instrumentalist' 이다. 나는 그의 작품들에서 파리'68혁명 때에 길거리와 벽에 나타났던 무정부주의적 구호들과 포스터들을 연상하기도 한다./이태호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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